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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화학공학과 이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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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송문화재단 작성일21-08-04 09:55 조회3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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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화학공학과 이채린

 부영여자고등학교

 

20195월 제가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때였습니다. 아마 오후에 있던 수학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년 이맘때쯤이면 너희들은 동기들이랑 웃으면서 학교 캠퍼스를 거닐고 있을 거라며 조금만 버티라고 하셨습니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캠퍼스를 걷는 상상, 그 상상은 가끔은 어느 날엔 하루를 더 힘낼 수 있는 용기도 주었지만 어느 날은 분수에 맞지 않는 몽상에 젖어 허우적거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희망과 몽상 그 두 가지는 마치 출렁다리의 끝과 끝 같아서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시간은 출렁다리의 중간에 서서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으려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비로소 제가 단단한 땅을 밟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서울에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드디어 얻었기 때문이었죠. 광역시도 아닌 여수라는 소도시에서 자라난 저에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큰 환상을 가져다주는지, 평생을 서울에서 자라난 사람은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외활동, 공연, 전시회 이런 모든 기회가 몰린 땅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넘쳐나는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으로, 일단 대학이라는 하나의 산을 해치웠으니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드라마나 영화만 질리도록 보곤 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런 저희에게 지금 푹 쉬어두라며, 수능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칠 정도의 큰일도 아니고 앞으로는 정말로 수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공부나 취직 이런 것들을 얘기했던 것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련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되었죠. 바로 코로나 19였습니다. 저는 2020년에 입학하여 갑자기 번진 전염병으로 새내기 배움터라든가, MT, 축제 등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을 뿐 아니라 대면으로 수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으며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학기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1학년 1학기를 빼앗긴 것만 같아 속상했습니다. 고대하던 서울 캠퍼스의 강의실이 아닌 여수의 집에서 노트북으로 ZOOM을 켜고 낯선 얼굴과 마주한 채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지식을 전해주고자 하는 교수님들 덕분에 온라인 수업에서도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였기 때문에 사회 관련 과목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대학에 가면 꼭 인문학 교양을 많이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수강했던 프랑스의 이해독일어권의 사회와 문화’, ‘현대인과 성서같은 과목들은 그런 저의 욕구를 채워주었습니다.

 

제 생각을 풀어내는 긴 글을 쓰는 수업은 모두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갈망하던 수업이었습니다. 숭실대학교는 기독교 학교이기 때문에 현대인과 성서라는 교양을 필수적으로 수강했어야 했는데, 이 강의에서 저는 교수님이 도덕 규범의 당위성을 위해 신을 요청했던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언급하실 때 철학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기독교책을 읽고 감상문을 쓸 때 무교임에도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유럽 같은 기독교 나라에 녹아 있는 기독교 문화나 기독교와 윤회 사상을 비교하며 글을 썼던 시간은 내가 정말로 대학생이 되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만년필로 소설이나 시를 필사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만년필을 제조하는 나라는 많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 독일과 프랑스에서 만든 만년필을 좋아합니다. 우스운 계기이지만, ‘독일어권의 사회와 문화프랑스의 이해라는 강의를 신청한 것도 단순히 만년필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어권 사회와 문화는 독일의 시작인 켈트족부터 프로이센 등의 국가 형성과 정치제도,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음악, 빈 분리파와 표현주의 등의 미술, 나치즘과 파시즘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에 ZOOM 수업이 있는 금요일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프랑스의 이해도 역시 프랑스의 형성부터 프랑스 혁명, 68혁명, 프랑스의 정치나 복지제도 등 다양한 배경을 배웠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프랑스 관련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작성하는 과제였습니다. 저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란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 북부 노르 지역의 탄광촌 이야기와 일제강점기 시절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교하기도 하고 프랑스의 68혁명과 현재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이슈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도서관 사이트에서 관련 논문을 찾고 깊이 사색하며 제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들은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코로나 19로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수 교양이었던 대학 글쓰기교수님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추천해주셔서 읽었는데 나쓰메 소세키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표현력이 와닿았습니다. 독일어권 사회와 문화교수님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천해주셔서 밀란 쿤데라의 허무주의와 상실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교수님들이 추천해주신 책을 시작으로 조지 오웰의 1984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같은 명작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또 나름대로 전시회도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1학년 1학기에는 모네에서 세잔까지라는 전시회를 보았는데 예술의 전당도 처음 가보고 오디오 가이드도 처음 들어봐서 새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는 기숙사에 살아서 더욱 전시회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나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전시회를 보면서 문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1학년 때 전공 기초 과목은 일반화학, 일반물리 같은 고등학교 내용에서 조금 더 심화한 과정이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2학년 1학기에 맞닥뜨린 과목은 큰 노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화공양론’, ‘공업유기화학’, ‘공업물리화학이 세 과목은 가끔 저에게 자신감을 잃게 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공부할 때 노트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세 과목이 워낙 분량도 많고 어려워서 처음으로 노트를 써가면서 공부했습니다. 노트를 쓰는 공부법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미리미리 공부하고 복습하는 습관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했던 과목은 공업 유기화학과목이었는데, 고등학교 화학 내용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알켄, 알카인의 명명법을 공부하는 게 즐거웠고 방향족 화합물이 합성되는 과정을 배우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2학년 1학기의 전공과목은 너무나 기초적인 내용이라서 2학기부터 개설되는 다양한 전공 선택 과목을 듣고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제 취미인 만년필에 대해서 덧붙여 말해보자면, 만년필은 유럽에선 프랑스나 독일이 유명하지만, 동양에선 대만이나 일본이 유명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알파벳 필기체는 두껍게 써야 알아보기 쉬우므로 프랑스와 독일의 만년필 촉은 두껍고 한자는 세밀한 획을 써야 하므로 대만과 일본의 만년필 촉은 가늘다는 것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쓰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듯 수많은 화학공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저에게 필요한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남은 학교생활을 그 능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 19로 힘든 상황 속에서 어려움 없이 학업을 지속하도록 도와주신 재단의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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